명탐정 코난 단편집

[명탐정 코난/단편] 그저 너이기 때문에

GS(TS) 소재 | 아카신(아카코), 스바신(스바코) | 수위: X | 주의: TS 소재. 관계 날조.

* 아카신 / 약 아카코

* 여체 신이치

* GS(TS) 소재. 임신 소재. 

* 아카이와 신이치의 관계에 대하여

* 설정에 맞춰 약간 원작 내용 및 인물 설정이 날조될 수 있습니다. (예: 신이치, 란 나이 등)

* 검은조직 소탕 후라는 설정이므로 그 과정이 날조됩니다.


본 글의 인물, 배경, 기본 설정 등은 모두 만화 <명탐정 코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고로, 해당하는 요소들에 대한 권리는 원작자에게 있습니다! 저는 스토리만!



임시 저장에 쌓아둔 것이 너무 많네요... 지금 게시글로 공개한 것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임시에 쌓여서 썩어가고 있어요... (...)


지금 이것조차도 벌써 1년이 훌쩍 넘게 쳐박혀 있었어요 (야

그래서 우선은 임시글부터 하나하나씩 비워 나가려고 합니다..! 장르나 작품에 상관 없이 우선 오래된 것들을 하나 하나 올릴 것 같아요. 일주일 내로 모든 것을 비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부지런히 써야겟네요... 



그저 너이기 때문에



Story written by 시나래



  슈이치는 팔짱을 꼈다. 그렇게라도 양손을 묶어 두지 않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자동으로 품 안의 담배로 향했으니까. 병원 복도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묶어 놓은들 몸 속에 흐르는 초조함까지 막지는 못했다. 괜시리 하얀 바닥 위를 더럽히려는 발을 딱 붙인 채 한쪽 벽에 기댄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 머리를 벽에 맞닿아 보았다. 그리고 코로 작은 날숨을 뱉었다.

  "긴장 했나."

 슈이치는 다시 눈을 뜨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틀었다. 복도 의자에 앉은 자신의 상사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옛 연인 중 하나이던, 이제는 그저 하나의 동료가 되어버린 여자가 작은 미소를 띈 얼굴로 앉아 있었다.

  "슈도 긴장을 하나 보네." 그녀가 말했다.

  슈이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애써 하려는 부정의 의미인 것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긍정의 의미인지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그렇게 티가 났던 모양일까.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초조하다는 것. 그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 뿐인데. 정작 모든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그런 무기력함에 대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자신이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어렵다는 임무를 숱하게 맡고 성사시켜온 그임에도 이것만큼은 자력으로 이룰 수 없다는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인생에 한 번 오는 순간이니." 제임스 블랙이 현자의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잖나."

  준비. 그런 것은 없었다. 순전히, 모든 것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임신... 이래요."

  그녀가 처음 조심스럽게 소식을 전했을 때, 슈이치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저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기쁨, 흥분. 그런 것은 없었다. 당황조차도 그의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이었겠지만, 어떤 현실적인 무게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말은 말 그 자체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도 그녀도 그것을 하나의 사실 그 이상의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의 무반응이 그녀에게 얼마나 불안을 가져왔는지는 후에 알게 된 일이었으니까.

  "슈가 아빠라니. 상상이 안 되는데." 조디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슈이치는 피식 웃음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아이를 가진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일. 이 모든 것은 슈이치가 기대를 하거나 바라지도, 예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가정을 이루는 일, 그 너머 누군가와 결혼을 이루는 일 자체가 계획에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원할 만큼 사랑을 하리라고는, 다시 한 번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기..."

  새로운 목소리가 슈이치의 사념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시선을 돌린 곳에는 아케미를 닮은 그 여자가 서 있었다. 모리 란. 신이치의 평생을 함께 한 단짝 친구이니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그는 아직도 그녀를 볼 때면 겹쳐지는 과거의 기억에 흠칫 놀라곤 했다.

  슈이치의 시선에 그녀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저... 상황이 어떤가요?"

  슈이치는 잠시나마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짧게 대답했다. 꽤 딱딱하게 굳은 어투로.

  "들어간지 얼마 안 돼."

  그러니 나도 몰라.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그 의미를 읽었는지 그녀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란이 이해해. 슈 지금 긴장한 상태니까." 조디가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긴장. 초조함. 불확실해서 부정하고 싶었던 그 감정들이 그의 안에 발뺌할 수 없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지치고 힘이 들 것은 그 사람일 텐데. 슈이치로서는 알 수 없는, 평생토록 알 수 없을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었는데. 흔히들 지르는 비명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침착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참아내는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과 간간이 일그러지는 얼굴, 삼킬 수 없어 흘러 나오는 신음소리와 가빠지던 숨. 본인은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지쳐가고 있었다.

  조직이 먹인 약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것에 대항하기 위한 해독제 시험품과의 충돌인지 정확한 원인은 밝힐 수 없었지만 모든 사건과 그 시간이 흐른 후 본모습으로 돌아온 신이치의 몸은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눈에 띄는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예전보다는 더 쉽게 지쳤고 면역력이 떨어진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인지 임신기간 중에도 쉽게 힘에 부쳐 하는 일이 많았고 진통을 견뎌내는 동안에도 눈에 띄게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저를 안심시키려 했었지. 자신의 아픔보다도 그의 두려움을 보듬으려 하며. 낯선 이들만이 가득한 방에 홀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애써 웃어 보이면서.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슈이치가 잠에서 깬 것은 그리 늦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큰 소음이 있었던 것도, 누군가의 감촉이 느껴진 것도 아니었음에도 눈이 번쩍 뜨였다. 일종의 본능처럼.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여느 아침과 같은 풍경. 이제는 제 곁에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러울 만큼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그 사랑스러운 사람의 얼굴. 슈이치는 평소처럼 몸을 살짝 웅크린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보는 얼굴임에도 그 존재가 항상 새롭고 또 고마운 그이기에, 이러한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그이기에 그는 그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눈 앞의 존재가 단순히 하나의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져 보았다.

  "깼어요?"

  신이치가 눈을 뜨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침이면 늘 그렇듯 반쯤은 잠긴 목소리였다. 신이치의 얼굴을 만지던 슈이치의 손이 멈칫했다.

  "깨운 건가?"

  슈이치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신이치는 옅은 미소를 띠며 작게 웃었다. 살며시 눈을 뜬 그녀는 슈이치의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니, 오늘 좀 일찍 깼거든요."

  대답을 한 신이치가 흠칫하며 눈을 질끈 감고는 숨을 짧게 들이켰다. 그 모습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슈이치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왜? 어디 안 좋아?"

  잠시 숨을 고르던 신이치가 다시 눈을 떴다.

  "그게... 사실은..."

  머뭇거리는 신이치의 말에 슈이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통증. 현재 신이치의 몸 상태. 그리고 시기를 생각하면...

  "설마...."

  슈이치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신이치는 변명을 할 때면 자주 보였던 특유의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애초에 비몽사몽인 것도 아니었지만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잠이 모두 달아났다. 슈이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언제부터?"

  신이치도 따라 앉으려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많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산달이 가까워지면서 꽤 지친 탓인지, 아니면 진통 때문인지 움직임이 어딘가 힘겨워 보였다. 슈이치는 재빨리 팔을 벌려 그녀를 도왔다.

  "한... 4시 쯤 깬 것 같아요."

  신이치가 침대 머리맡에 기대 앉으며 말했다.

  4시. 슈이치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로부터 이미 서너 시간이 지나 있었다.

  "깨웠어야지."

  슈이치가 나지막이 혼을 내듯 말했다.

  "한밤중에 잘 자고 있는 사람을 왜 깨워요. 어차피 진통 시작해도 진짜 나오려면 한참은 걸릴 텐데. 기다리는 동안 잠이라도 잘 자라고 둔 거예요."

  신이치가 입을 내밀며 투정을 부리듯 대답했다.

  슈이치는 고개를 저으며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단 병원에 가자."

  그리고 지금. 벌써 그로부터 다섯 시간 가량이 지났다.

  "오래 걸린대요?"

  란의 뒤로 함께 온 비슷한 또래의 여자 하나가 말했다. 재벌집 아가씨였던가. 신이치의 또 하나의 단짝. 늘상 그랬던 것처럼 어딘가 철부지 같았다.

  "짧으면 30분 정도에서 길면 세 시간 정도라던가?"

  조디가 대답했다.

  "뭐, 큰 문제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 란이랑 소노코도 왔으니 나랑 제임스는 편의점에 좀 갔다 올게."

  조디가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슈이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와 조디가 비운 자리에는 란과 소노코가 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색한 기류와 긴장감이 드는 침묵. 물론 슈이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사람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기에.

  란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친구에 대한 걱정이었을까. 아니면 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 불편하기만 했던 슈이치와 한 공간에 있는 것에 대한 어색함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첫만남 때부터 슈이치는 란을 아케미와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외관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풍기는 분위기에서 둘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란과 몇 마디 말을 나누어 보지 않은 상황에서도 슈이치는 한 눈에 볼 수 있었던 듯했다. 란 또한 아케미와 같은 바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순진함과 착한 성품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강인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직에 접근하기 위해 계산적으로 이용했던 미야노 아케미지만 슈이치 또한 어느새 그녀에 대한 감정을 품어냈다. 임무를 위한 것이라지만 사람의 마음을 이용한다는 데에서 나오는 죄책감. 미야노 아케미라는 사람에 대한 호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좋아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과 행동. 그 모든 것이 후에는 복합적으로 뒤섞여 그의 안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사랑이긴 했을까. 그저 자신이 신세를 진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슈이치 자신조차도 그 마음의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 그는 무너졌다. 그것이 정말 진정한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죽음으로도 갚지 못할 죄책감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역시 그 상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녀는 그 때문에 죽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랑의 가능성으로부터, 누군가에게서 받을 수 있는 애정과 관심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정확히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두려움인지 아니면 책임감인지. 그도 아니라면 도피였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래서 그는 그 미야노 아케미를 너무도 닮은 란이 불편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아케미가 떠올랐으니까. 그런 성격 때문에 그 여자가 어떤 운명을 맞이해야 했는지를 생각해야 했으니까. 자신이라는 한 사람 때문에 자신으로부터도, 주변의 그 모든 것으로부터도 배신 당하고 버려져야 했던 그 사람에 대한 죄책감을 간헐적으로 끄집어내야 했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죄책감은 후에 아카이가 감히 쿠도 신이치라는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아케미 하나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것으로 부족해 자칫 잘못하면 신이치마저 다치게 하고 이를 지켜봐야 할 란에게도 아픔을 주게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내심 란이 나서서 자신과 신이치의 관계를 반대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란이 아무런 말 없이 둘의 관계를 받아들여주었을 때 한 편으로는 그것에 안심이 되면서도 두렵고 원망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그녀는 신이치와 슈이치의 관계에 관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슈이치로서는 더더욱 란과 마주해야 할 일이 없었고 그에 따라 그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어색해져만 갔다.

  하지만 신이치가 임신 소식을 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란은 슈이치를 찾아왔다.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지만 신이치를 통하지 않고 만나는 일은 없었던 만큼 슈이치로서도 약간은 당황했다.

  "얘기... 들으셨다고 들었어요."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가득 채우던 불편한 침묵을 깨고 란이 말했다.

  "얘기?"

  슈이치가 되물었다.

  "신이치 아이 가진 거 말이에요."

  슈이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앞에 마주앉은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란이 그 일로 슈이치를 찾았다는 것이 그에게는 의외였다.

  란은 슈이치로부터 어떠한 반응을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자 다시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고함도 서려 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카이 씨는... 별로 기쁘지 않으신 건가요?"

  기쁘다? 기쁘지 않다? 그런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도 몰라."

  슈이치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기뻐야 하는 건가. 딱히 기쁠 이유도 그렇다고 기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아카이 씨, 신이치 아끼시죠? 사랑하시는 거 맞죠?"

  란이 말했다. 슈이치는 또 한 번 답을 하지 않았다. 란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

  "저에게 있어서 신이치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사랑하는 친구고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가족이죠. 그리고 신이치도 저를 아낀다는 건 잘 알고 있었어요. 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는 것도요."

  란은 잠시 말을 멈추고 쉬었다. 어딘가 꺼내기 어려운 말을 끄집어내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래 지나지 않아 바로 이어 말했다.

  "그래서... '그 일'... 이 생겼을 때도 말을 안 한 거겠죠. 제가 말려드는 게 싫었을 테니까요."

  말을 하는 란이 회상에 젖듯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모호한 표현이었지만 아카이는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해는 해요. 저였어도 아마 쉽게 말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그렇게나 위험한 일이면 더더욱..."

  슈이치의 머릿속에 그 기억이 스쳤다. 정확한 규모도, 그 세력의 한계도 알지 못하던 날의 긴박함이. 몇 차례나 모두의 목숨을 걸어야 했던 날들이. 아포톡신이라는 독극물의 효력과 미완의 해독제가 신이치의 몸 속에서 싸우며 그녀를 무너뜨린 일이. 결국 그 때문에 그녀가 치명상을 입고 조직과 함께 죽음의 너머로 사라질 뻔했던 일이.

  위험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혼자 그렇게 숨기고 떠안으면서 많이 힘들었겠죠. 그래서 이해하려고 했어요. 이해해주고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란이 이어 말했다.

  "하지만 역시...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어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가 싶기도 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어줄 수 없었다는 게 너무도 분하고 서운했어요. 적어도 말 한 마디라도 해 주고 곁에 있어 주는 것, 곁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소중하게 생각해 준 게 고마우면서도 그렇게 혼자 떠안은 신이치가 원망스러웠어요."

  슈이치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란은 잠시의 쉼을 가진 후 천천히 이어갔다.

  "저에게 신이치가 소중한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신이치에게 아카이 씨는 큰 존재일 거예요."

  말의 울림이 어딘가 서글픈 듯도 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추억하는 것 같이.

  "아카이 씨도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우실 테지만 그건 신이치도 마찬가지예요."

  란의 목소리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확고함이 서려 있었다.

  "신이치 혼자 불안해하고 있을 거라구요. 감정 표현도 잘 못 하고 혼자 숨어서 힘들어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안다. 너무도 잘 안다. 쿠도 신이치라는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자신의 두려움을, 자신이 짊어지려는 짐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의도적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그것이 아무리 친한 사람일지라도, 아니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일수록 더욱 자신을 숨기고 괜찮은 척, 태연한 척 가면을 만들어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긍정을 한다면 자신은 그러한 신이치를 무시하고 버린 셈이 되는 것이고 부정을 하기에는 그런 신이치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부탁드릴게요."

  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이치에게 솔직하게 보여 주세요. 두렵다면 두려운 것을. 기쁘다면 기쁜 것을. 무엇이 됐든 보여주고 같이 이겨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세요."

  하지만 슈이치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름 신이치를 살핀다고 살폈지만 결국 감정까지 솔직해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태생적으로 감정 표현이 서툰 것이 핑계라면 핑계였다. 비겁한 변명이었지만 슈이치는 끝내 그 뒤로 숨어 버렸다.

  신이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며 그 아이를 밀쳐내려 했을 때와 같이.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때와 같이. 아케미에 대한 죄책감을 얄팍한 핑계 삼아서 숨어버려 했을 때와 같이.

  "언니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 정도는 알아. 당신이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그 눈빛, 표정, 목소리... 모든 것에서 알 수 있었으니까. 정말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시호라는 이름을 가진 아케미의 여동생은 슈이치를 처음 마주하던 날 그렇게 말했다.

  신이치에 의하면 이름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했다는 그녀의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난 언니가 당신을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그러지 못하게 내가 막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할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게 했을 거야."

  그래. 그게 아케미가 아니었다면, 아케미보다 훨씬 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정체를 알았을 때 욕을 퍼붓고 관계를 끊어 버릴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케미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아니 아케미가 아닌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그녀는 잘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 그거 잊으면 안 돼. 우리 언니, 절대로 잊으면 안 돼."

  단어 하나하나를 힘주어 말하는 시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날 시호를 대면한 순간 이후 처음으로 슈이치는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거 하나는 약속하지."

  잠시 시호는 감정을 추수르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슈이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어설픈 죄책감으로 그 아이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마."

  '그 아이'. 신이치의 이야기였다.

  "언니를 핑계로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로 그 아이까지 다친다면 나 당신 정말로 용서 안 할 거니까."

  슈이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이해의 뜻을 보였다.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일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어찌나 답답했으면 자신을 죽어라 미워했다는 사람으로부터 등을 떠밀리게 된 것인지. 자신이 상처를 입히고 죽음까지 내몰았던 사람의 동생이, 그 일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던 사람이 슈이치에게 아케미의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를 붙잡으라는 말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이란 사람이 좋다고 난리들인 건지. 이해할 수 없어."

  한숨과 함께 시호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곤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그것은 슈이치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자신이 그렇게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어쩌다가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그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인지. 어떻게 해서 신이치를 만나 품어 왔던 것인지. 어째서 신이치는 다른 사람이 아닌 아카이를 선택해 사랑을 말한 것인지.

  “마음에 안 들어. 언니도. 그 아이도.”

  시호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더 마음에 안 들어. 무슨 자격이 있다고 당신이 피하는 거야? 어차피 제대로 마음 정리도 못할 거면서 왜 그렇게 다른 사람 고생시켜가면서까지 아닌 척 하는 거야?”

  슈이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 이유에 대한 답을 명확히 내릴 수 없었다.

  책임감? 그래, 책임감이라고 해 두자. 어느 정부에도 소속되지 않은 민간인이었으니까. 실제로도 아카이보다는 꽤 어린 나이었지만 외관은 어린아이에 불과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지키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곁에 둘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이 감히 욕심을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격을 논한다면 그것은 슈이치에게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기 위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렇게 자신을 세뇌하면서 신이치를 향해 품은 마음을 식혔다.

  그럼에도 신이치는 말했다. 슈이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추리의 답을 내놓듯, 자신이 생각해낸 계획을 말하듯 명확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좋아해요, 아카이 씨. 좋아한다는 말로 할 수 없을만큼 좋아해요."

  "… 그래."

  그런 고백을 들으면서도 슈이치는 어째서인지 당황은 하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서는 이미 일고 있었던 것인 듯도 했다. 아니면 스스로도 신이치에 대해 여러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내놓을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바뀌는 건 없을 것 같군."

  신이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이 씨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기는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신이치의 얼굴에는 힘없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아카이 씨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아닌가요?"

  고개를 저어야 했다.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정말 애초에 의도한 대로 신이치를 위해서 그녀에게서 멀어질 것이었다면 확실한 답을 내어주어야 했다.

  그런대 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을까.

  "제가 착각을 한 것이라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도… 잊어 주세요."

  살짝 얼굴이 붉어지기는 했지만 그 외에 크게 달라진 모습이 없는 신이치였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아카이 씨도 저와 같은 마음인 거라면…."

  스스로 확신이 없는 것인지 슈이치에게 여지를 주기 위함인지 신이치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슈이치는 여전히 답을 하지 못했다.

  신이치 역시 말을 덧붙이지 않아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한참이 지난 뒤에 신이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또렷하게 물었다.

  "아케미 씨 때문인가요?" 

  슈이치에게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지만 그 부재만으로 신이치에게는 충분히 답이 되었다. 신이치는 이어서 말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잊으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아니, 억지로 잊어야 한다고 하신다면, 그렇게 아케미 씨를 잊는다고 하시면 제가 아카이 씨 곁을 떠날게요."

  신이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소중한 사람이었죠? 아카이 씨 마음, 이해 못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잊으면 안 돼요. 일부러 잊으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구요. 아카이 씨가 잊으면… 그러면 정말로 완전히 사라지는 게 되잖아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게도 기회를 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이제와서 생각하자면 웃기는 일이었다. 정작 자신은 신이치를 밀쳐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슈이치를 붙들고 먼저 마음을 표현한 사람은 신이치였지만 사실은 슈이치야말로 더 먼저 더 깊이 신이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 얼마의 시간 동안 쿠도 신이치라는 사람을 마음에 두어 왔는지 명확히 짚어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에도가와 린코라는 아이를 만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었다. 직접 마주치기 전에 이미 조디로부터 많은 찬사와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그것에 그리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그저 어린 꼬마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론 그런 그의 생각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깨지게 되었다. 고작 7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똑똑한 두뇌와 빠르고 정확한 추리력에 보통 어른은 물론이고 웬만한 첩보 요원보다도 날카로운 통찰력. 속까지 까만 어둠으로 감춘, 읽을 수 없는 놈들의 움직임을 한 수, 두 수 앞까지도 꿰뚫어보는 그 실력은 단순히 꼬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세운 전략은 슈이치 자신의 것과 맞먹었고 심지어는 그 자신도 생각해내지 못한 부분까지 집어내는 것을 보며 슈이치는 아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에도가와 린코가 세운 전략 중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는 단연 아카이 슈이치의 '죽음'이었다. 빼돌린 CIA 요원을 변절 의혹을 최소화하며 검은조직에 돌려놓으면서도 FBI 측의 손실도 방지한 그 전략은 여러모로 큰 기회를 가져다준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지만 슈이치 개인에게도 전환점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신분을 받아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얼굴로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이중생활이 에도가와 린코라는 아이를 보는 슈이치의 관점을 돌려놓았던 것이다.

  아이를 통해 살게된 집의 바로 옆에는 아이와 긴밀한 관계로 보이는 박사가 살고 있었고 그 박사라는 사람은 온갖 잡다한, 슬쩍 보기에는 사소하고 쓸모가 없어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는 발명품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더불어 아이가 친척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베르무트 못지 않은 변장의 귀재였다. 그 모든 것을 거치고 나니 슈이치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목소리를 바꾸고 얼굴을 바꾸고. 정체를 아예 바꾸어 버려도 아무도 모를 만큼.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그 아이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눈치채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의 존재가 그 주변에 미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았으니까. 아이가 나타나기 전과 후로 탐정 모리 코고로의 평판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아니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그저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아도 눈에 띄는 사실이었다. 그 조차도 눈치 채지 못한 사람들이 한심해 보일 정도로. 그리고 딱 그 시기즈음 사라진 사람이 있었다. 쿠도 신이치라는 이름의 유능한 탐정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어떻게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는지. 고작 어린아이가 왜 그렇게 검은 조직의 일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지.

  그렇다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없어야 했다. 그 속이 어떻든 보이기에는 어린아이였고 나이와 상관 없이 민간인의 신분이었다. 그 능력이나 정체와는 상관 없이 연루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더욱 신경쓰였던 것이. 나름 FBI의 요원으로서의 책임감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왠지 모르게 절박해 보이는 아이의 눈빛 때문이었을까.

  조직에 대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아이와 엮이는 일은 많아졌고 더 많은 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 에도가와 린코의 모습으로 마주할 때도 있었고 쿠도 신이치로 협력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신이치는 신이치였고 늘 같은 사람이었다. 알면 알수록 마음이 쓰이고 저도 모르는 사이 계속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사람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진심을 다하고 싶은 상대가 되어 버린 사람이었다.

  사실 정확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된 날부터 신이치의 고백을 듣던 날, 모든 죄책감과 가책을 뒤로 한 채 감히 신이치와 함께하기로 결정을 내린 날을 지나 마침내 결혼에까지 이르던 날, 그리고 두 사람의 아이를 기다리는 이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슈이치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어째서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서 너와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일까.

  "아카이 씨?"

  간호사의 부름에 슈이치의 눈이 뜨였다. 의자에 앉아 있던 제임스와 조디는 물론 소노코와 란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슈이치는 기대 있던 등을 벽에서 떼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자신을 부른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축하드립니다. 따님이세요."

  슈이치는 잠시 멍하니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소식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지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곧 신이치의 소식을 기다리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밝아지며 웃음 소리와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른 채로 가만히 선 슈이치의 모습에도 그런 사람이 낯설지 않은 듯 간호사는 싱긋 웃었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들어가서 보시겠어요?"

  가만히 서 있는 슈이치의 뒤로 어느새 조디와 제임스가 다가와 서 있었다. 

  "왜 가만히 있나? 어서 들어가 보지 않고."

  제임스가 말하는 동시에 조디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슈이치는 잠시 두 사람을 보다가 간호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간호사는 웃으며 그를 분만실로 안내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보호복을 갖춰 입고 분만실 내부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주변을 정리하는 의료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기다리던 이가 눈에 들어왔다.

  신이치는 방 안 가운데에 놓인 침대에 앉아 있었다. 올린 등받이에 기댄 채 땀에 젖은 모습으로 무언가를 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슈이치는 저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에 맺혀 있던 불안감이 한번에 풀어져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온화한 얼굴로 갓 태어난 아이를 보는 신이치는 지친 듯 보였지만 눈이 부시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슈이치가 다가가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슈이치 씨."

  슈이치는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웃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그 자체로 너무도 소중해서. 그 순간 단 한가지 외에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너이기 때문에. 너였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했구나. 너이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하는구나.

  잠시 가만히 그녀를 눈에 담던 슈이치가 한 걸음씩 천천히 떼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의도하거나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고생 많았어."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늘 그녀를 향해 가져 왔던 마음을, 그리고 새로이 그 순간 차오른 애틋함을 담아.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많이 아주 많이 길어져 버렸습니다... 인데 또 막상 보다 보니 그리 긴 것 같지도 않네요... ( ._.) 근데 처음 계획했던 건 진짜 간단한 단편이었기 때문에 원래보다 많이 길어진 건 사실이에요 (...)

중간 중간에 보고 싶은 장면들부터 우선 써놓고 그 장면들을 잇는 식으로 썼는데 중간에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우선 끝을 보기나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막 대충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반 이상은 이미 써 놓은 채로 1년 반 이상이 지나 버려서 (...) 원래 어떤 느낌을 쓰고 싶었던 건지도 희미해진 것 같네요;;;; 그래도 일단 급한대로 어떻게든 마무리는 지어습니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에 좀 어설프고 대충 넘기는 부분도 많아요..ㅠㅠ (그리고 아마 저는 이 글을 다시 읽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으 오글거려... (...))

그래도 이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가장 긴 것이었던 터라 어찌어찌 끝내고 나니까 좀 후련하기도 하네요ㅋㅋㅋㅋㅋㅋㅋ (...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닷! (._.) ))

Twitter: @sinarae_kor FF.net : lisa-sinarae AO3: lisa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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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시나래 (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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